이럴때 이맛집

국수 정(情)

업종 글쓴이 여기부산
주소 부산 금정구 남산동 981-17 전화번호 --
등록일 11-11-25 평점/조회수 2 /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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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이 즈음에 유달리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 콩국수다. 여름철 보양식이라 해서 이런저런 귀한 것들을 찾지만, 비교적 값싼 재료로, 집에서,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게 콩국수다. 콩이란 게 원래 쇠고기보다 나은 영양 공급원이다. 보양의 효과가 다른 귀한 것들에 못지 않다는 이야기다. 깔깔하게 씹히는 국수 가락과 함께 들이키는 국물의 시원함은 통쾌무비해서 폭염의 괴로움을 단번에 날려 버린다.

그런데 콩국수 이거, 간단해 보여도 만드는 이의 정성과 손길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다. 흔하게 보는 것이지만 흔하지 않게 즐길 수 있는 게 콩국수란 이야기다. 남산고등학교 앞 산복도로변에 있는 소박한 국수 전문점 '국수 정(情)'(051-515-6067·부산 금정구 남산동 981의 17)을 운영하고 있는 김병균(56) 씨에게서 콩국수 이야기를 들어봤다. 걸걸한 목소리의 그는 자기가 만든 국수가 최고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이다. 국수에 대한 그 자부심이 밉지 않다.

먼저 보통의 냉국수를 달라고 했다. 국수 전문점이란 타이틀을 걸어 놓은 집이니, 그 내공(?)을 가늠해 보고팠던 것이다. 스테인리스 그릇에 나온 냉국수는 모양이 깔끔했다. 가는 가락 위에 김치, 계란, 김, 참깨 따위가 고명으로 얹혔다. 김치가 좋았다. 탱탱한 게 공장이 아니라 집에서 담근 김치임이 분명했다. 음식점에서 김치가 좋으면 다른 건 웬만큼 부족해도 다 용서가 되는 듯한 기분이 된다.

국수의 맛이 깊다면 이상하게 들릴까? 그런데 그랬다. 국수 가락을 한 입 넣으니 구수한 향이 먼저 올라 왔다. 그 뒤엔 깊은 무엇이 남았다. 국수 하나에 무슨! 스스로도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사실인 걸. 약간은 놀랐다.

표정을 살피던 김 씨. 씨익 웃으며 "육수 때문"이라고 했다. 9시간을 끓여 뽑아낸 육수라고 했다. 국수 하나 만드는데 무려 9시간이나 걸려 국물을 뽑아낸다고? 비법도 비법이지만 무엇보다 장인정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름드리 큰 솥에다 9시간을 꼬박 서서 저어가며 기다려야 합니더. 인내심 없으믄 못하지요." 그만큼 정성이 들어간 국수란 얘기였다.

국수맛을 좌우하는 건 누가 뭐래도 국물이다. 김 씨는 그리 고집하는데, 그 사연을 길게 풀어 냈다.


"우리 어머니 성함이 이맹출입니더. 작년에 돌아가셨지예. 해방 전에 아버지 사업 따라 일본에 가신 겁니다. 일본에는 와, 분식이 잘 발달해 있다 아입니꺼. 마침 집 옆에 4대째 가업으로 내려오는 분식점이 있었다 카데예. 형편이 어렵다 보니 어머니가 거기가 막일을 했다 합니더. 10년을 그리 하니 그 집 사장이 잘 본 거라. 마침내 다시(맛국물) 빼는 비법을 가려쳐 주더라 그깁니더. 그래 갖고 해방 뒤 귀국해서는 초량동 성분도병원 근처에서 국숫집을 연거라요. 인기 좋았답니다. 육수가 대단했거든예. 그 방법을 제가 이은 겁니다."

"처음에 저는 횟집을 제법 크게 했었어예. 주례동에서 했는데, 밤에 택시 기사분들을 상대로 국수도 팔았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회보다 국수를 더 좋아하는 거라요. 육수가 끝내준다면서요. 그래서 횟집은 때려 치우고 아예 국숫집을 차린 깁니더. 1999년인가? 부전동에서 작게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나는 국숫집할 때 내가 1등 할 거라 생각했거든예. 혼신의 힘을 다해 육수를 빼거든요. 딱 한 자리 서서 땀을 비오듯이 뺍니더. 장인 정신 없으면 안돼요 이거. 지금 이 자리는 2004년도에 왔네예. 중간에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더. 그런 거는 묻지 마이소. 그건 그렇고, 육수, 안 독특합니꺼?"

이야기인즉슨, 이 집 육수가 70년 가까운 전통을 가졌다는 것이다. 깊은 맛이 그냥 느껴진 게 아닌 것이다. 국수 국물이 아니라 그냥 음료수로 마셔도 괜찮을 듯 싶었는데, 사실 그걸 찾는 이도 간혹 있다고 했다. "아침 해장용으로 내놓으라는 사람도 많습니다. 가게 문 열기도 전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니까요. 그래서 육수만 따로 팔기도 합니더. 그냥 마시면 조금 짠데, 국수가 들어가면 간이 딱 맞아예."

도대체 육수에 뭐가 들어가냐고 물었다. 비법이라 가르쳐 줄 수 없다더니 계속 조르니 마지못해 말해줬다. "멸치가 기본입니더. 새우도 조금 들어가고. 새우는 많으믄 안돼. 새우맛이 강해서 멸치맛을 죽이거든예. 거기다 다시마, 뭐 그런거 들어갑니다. 중요한 거는 육수에 멸치맛이 나도 비린내는 전혀 없어야 한다는 깁니더."


그런데 이런 육수를 콩국수에도 쓰냐고 했다. 콩국수에 다른 육수를 쓰는 경우는 드물다. 맑은 물에 콩즙을 넣고, 소금 등으로 간하는 게 보통이다. 김 씨는 육수를 쓴 콩국수를 원하면 내놓고, 그게 싫다는 사람에겐 보통의 콩국수를 내놓는다고 했다. 사실 그도 콩국수에 육수를 쓴 지는 오래되지 않는다고 했다.

"어느날 스님 한 분이 우리 가게에 와서는 콩국수를 시키는 겁니다. 늘 내놓는 걸 내놓을라 하니, 이 집 특기가 육수라는데 왜 육수를 쓰지 않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콩도 잘못 하면 비릴 수 있는데, 거기다 멸치 육수까지 더하믄 맛이 이상할 거라 그랬습니다. 전에는 육수로 콩국수 만들겠다고는 생각 안해봤거든예. 그래도 그 스님 한 번 만들어 내보라는 겁니더. 할 수 없이 만들어 드렸지예. 그런데 감탄을 하는 거라예. 저도 한 입 먹어봤지예. 하, 무릎이 딱 쳐지는 겁니더. 이상할 거라 생각했는데 맛이 아주 진하고 향도 좋았거든예. 그 스님 아예 더 만들어 달라더만 싸갖고 갔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지예. 야! 산에서 도 닦는 스님이 반할 정도면 보통 사람들한테도 먹히겠다, 그래서 내놓게 된 겁니다."


두 가지 콩국수를 다 맛보자고 했다. 확실히 달랐다. 육수를 쓰지 않은 콩국수도 괜찮았으나, 육수로 만든 콩국수는 훨씬 고소하고 풍미까지 진했다. 육수로 된 콩국수 먹다 일반 콩국수를 먹어보니 영 밋밋한 느낌이었다. 김 씨는 우연히 새로운 맛을 발견했던 것이다.

김 씨는 집에서 이런 육수를 만들기는 어려울 테지만, 그래도 맛난 콩국수를 만들려면 무엇보다 좋은 콩을 골라야 한다고 했다. 자신은 비싸도 강원도 태백에서 나는 콩만을 고집한다 했는데, 아무래도 수입콩은 때깔은 좋아도 맛이 헐해 진다는 이유에서라고 했다.

"조심할 거요? 콩을 잘 삶아야지예. 마이 삶아뿌믄 메주 냄새가 나고, 덜 삶아뿌면 비린내가 나고. 또 콩을 끓일 때 물이 끓기 시작하면 불을 살짝 낮춰야 됩니더. 그래 갖고 45~50분 정도 삶아야지예. 삶은 콩은 바삭해도 안되고 죽처럼 흐물해도 안됩니더. 아참, 콩 껍질은 안까고 그냥 씁니다. 양분이 껍질에 다 있다 안하데요."


현재 '국수 정'의 명의는 김 씨가 아니라 김 씨의 아들 문경(28) 씨 앞으로 돼 있다. 일식요리를 전공한 아들이 굳이 국숫집을 이어받겠다는 게 기특해 일찌감치 명의를 넘겨 줬다고 했다. 요컨대 3대째 내려오는 국숫집이란 것이다.

"콩 좋은 거 세상이 다 안다 아입니꺼. 콩국수는 우리같은 서민이 묵던 보양식인 기라요. 우리 집에서 이거 한 그릇에 6천 원 받습니다. 이 만한 값에 쇠고기보다 더 좋은 양분을 먹을 수 있는 기 또 어데 있겠습니꺼. 소화도 진짜 잘 되고요. 후루룩 편하게 먹지만 속도 든든합니다.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하거든예."

좋은 음식은 먼 데에서 찾을 일이 아니다. 흔하고 친숙하게 보이는 게 오히려 사람 몸에 득이 되는 법. 김 씨의 말은 그런 뜻이었다.

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
[이 게시물은 여기부산님에 의해 2014-12-11 15:20:52 부산일보 맛집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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