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때 이맛집

송정3대국밥

업종 글쓴이 여기부산
주소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 255-15 전화번호 --
등록일 11-12-13 평점/조회수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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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올해로 65년 된 돼지국밥집이 있다. 부산 서면시장 돼지국밥 골목에 있는 '송정3대국밥'이다. 1946년 송갑순(1977년 작고)이라는 이가 시작했다는 국밥장사를 며느리 최병숙(65) 씨가 넘겨 받았고, 지금은 최 씨의 장남 김기훈(43) 씨가 주인으로 있다. 3대가 '부산의 음식' 돼지국밥의 맥을 이어 온 것이다.

"그러니까 해방 다음해에 시어머님이 국밥장사를 시작했다는 거라. 수십 년 단골이었던 시아버님 친구분이 말씀해 주신 거니까, 맞겠지. 난 훨씬 더 오래 된 줄로 알았어."

65년의 근거를 묻자 최 씨는 그리 말했다. 당시 시아버지가 쇠고기와 돼지고기 등을 이리저리 대주는 사업을 크게 했는데, 한량이라 집에 돈을 안갖다 주었다. 견디다 못한 시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좋다, 밥장사라도 해서 애들은 내가 키우겠다, 대신 당신은 고기나 대주시라." 그리해서 부산 연지시장에서 좌판을 벌여 놓고 국밥장사를 시작한 것이 1946년. 이후 한국전쟁이 나고는 사람 많이 몰렸던 서면 지금의 가게 인근으로 옮겼고, 1960년대 초에 현재의 위치에 자리를 잡았단다.

"시어머님 고향이 해운대 송정이었어요. 송정댁, 송정댁 그랬지. 정이 참 많았던 분이었어요. 배고파 보이는 이가 있으면 불러다 밥 먹여 놓고는 돈 있으면 받고 없으면 그냥 보내고, 그렇게 하시더라고. 그게 고마워서 수십 년 단골 됐다는 분들도 많아요."

최 씨는 충청도 양반 가문 출신. 장사하는 게 부끄러워 가게에는 잘 들르지 않았단다. 그랬던 최 씨가 국밥집을 떠안은 것은 시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기 때문.

"어쩔 수 없이 식당을 맡게 됐는데, 장사라는 걸 해봤어야지. 하나님 섬기는 마음으로, 그냥 정직하자 그랬어요. 재료 좋은 거 쓰고. 순대 만들 때 우린 곱창만 써요. 곱창은 순대창보다 10배는 비싸거든. 그래도 그거만 고집했지. 정직한 데는 손님들이 알아 주더라고. 진짜 손님 많았거든."

고생 많이 했다. 더우면 더운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온 몸으로 견뎌냈다. 몸이 성치 못했다. 제대로 걷지를 못해 얼마 전 다리 수술을 받았다. 그 고생을 대물림하기 싫어 최 씨는 국밥장사를 자기 대에서 끊으려고 했다.

어이없게도!(최 씨는 "어이없었다"고 표현했다) 대학 나와 자동차 만드는 큰 회사에 다니던 큰 아들이 덜컥 가게를 물려받아 버렸다. 3년 전 몸이 많이 아파 가게를 접을까 고민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아들이 하겠다고 나섰던 것이다. "솔직히 지금도 탐탁찮아요. 허지만 어째. 팔자인걸."

밥 때가 지난 오후 3시 쯤인데도 '송정3대국밥'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백발의 노부부에서 앳돼 보이는 20대 아가씨들까지. 손님들도 대를 잇고 있는 것이다. 홀로 국밥을 먹고 있던 김병호(72) 할아버지는 40여 년 단골이라 했다.

"이 집 국밥 맛나요. 이 근처서 체육사를 운영하는데 점심은 대부분 여기서 먹었어. 몸 아프기 전에는 1주일에 네 번은 왔지. 지금은 의사가 육식을 줄이라 해서 1주일에 두 번 정도 와. 이렇게 대 이어 하는 집 드물고 귀하지. 오래 갔으면 좋겠어."

프랜차이즈니 그런 욕심을 낸 적도 있었던 기훈 씨. 하지만 접었다. 일을 크게 벌일 여유도 없었고, 돼지국밥이란 게 그리 큰 욕심을 내서는 안될 음식이라 깨달았던 것이다.

"돼지국밥이 그리 대단한 음식은 아니잖아요. 돈 한 푼 아쉬운 분들이 맘 편하게 드시는 음식이지. 허름한 이런 곳에 일부러 식사하러 와 주시는 게 얼마나 고마운데요. 맛 실망시키지 않고, 한 끼로 든든할 만큼 푸짐하게 드리려 합니다. 제가 남기는 게 좀 적어도 말입니다."

결혼이 늦었던 기훈 씨는 몇 달 전 아들을 봤다.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녀석을 두고 대물림 운운하는 게 우습지만 웬만하면 아들에게까지 돼지국밥이 이어졌으면 한다고 했다.

"우리 있는 이 골목이 돼지국밥 골목으로 알려져 있어요. 하지만 이름에 안맞게 퇴색하는 느낌입니다. 한때는 10여 집 넘게 있었는데, 지금은 우리 포함해 6집 정도밖에 안됩니다. 40~50년 됐다는 집도 있는데, 간판은 그대로 있어도 주인은 다 바뀌었어요. 대 이어 하는 집은 우리 뿐입니다. 그게 가슴을 아프게 해요. 전 제가 살아 있는 한 이 집을 지켜낼 겁니다. 큰 돈 욕심 없이 부산사람, 특히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집으로 말입니다. 제 아들이 그 바람을 이어주면, 흠흠, 그리 될 지는 모르지만…, 좋겠지요."

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
'송정3대국밥'

올해로 65년 된 돼지국밥집이 있다. 부산 서면시장 돼지국밥 골목에 있는 '송정3대국밥'이다. 1946년 송갑순(1977년 작고)이라는 이가 시작했다는 국밥장사를 며느리 최병숙(65) 씨가 넘겨 받았고, 지금은 최 씨의 장남 김기훈(43) 씨가 주인으로 있다. 3대가 '부산의 음식' 돼지국밥의 맥을 이어 온 것이다.

"그러니까 해방 다음해에 시어머님이 국밥장사를 시작했다는 거라. 수십 년 단골이었던 시아버님 친구분이 말씀해 주신 거니까, 맞겠지. 난 훨씬 더 오래 된 줄로 알았어."

65년의 근거를 묻자 최 씨는 그리 말했다. 당시 시아버지가 쇠고기와 돼지고기 등을 이리저리 대주는 사업을 크게 했는데, 한량이라 집에 돈을 안갖다 주었다. 견디다 못한 시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좋다, 밥장사라도 해서 애들은 내가 키우겠다, 대신 당신은 고기나 대주시라." 그리해서 부산 연지시장에서 좌판을 벌여 놓고 국밥장사를 시작한 것이 1946년. 이후 한국전쟁이 나고는 사람 많이 몰렸던 서면 지금의 가게 인근으로 옮겼고, 1960년대 초에 현재의 위치에 자리를 잡았단다.

"장사 시작한 시어머니, 정이 많으셨죠.
물려받고 나서도 그냥 정직하게 하자, 그랬어요."

"시어머님 고향이 해운대 송정이었어요. 송정댁, 송정댁 그랬지. 정이 참 많았던 분이었어요. 배고파 보이는 이가 있으면 불러다 밥 먹여 놓고는 돈 있으면 받고 없으면 그냥 보내고, 그렇게 하시더라고. 그게 고마워서 수십 년 단골 됐다는 분들도 많아요."

최 씨는 충청도 양반 가문 출신. 장사하는 게 부끄러워 가게에는 잘 들르지 않았단다. 그랬던 최 씨가 국밥집을 떠안은 것은 시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기 때문.

"어쩔 수 없이 식당을 맡게 됐는데, 장사라는 걸 해봤어야지. 하나님 섬기는 마음으로, 그냥 정직하자 그랬어요. 재료 좋은 거 쓰고. 순대 만들 때 우린 곱창만 써요. 곱창은 순대창보다 10배는 비싸거든. 그래도 그거만 고집했지. 정직한 데는 손님들이 알아 주더라고. 진짜 손님 많았거든."

고생 많이 했다. 더우면 더운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온 몸으로 견뎌냈다. 몸이 성치 못했다. 제대로 걷지를 못해 얼마 전 다리 수술을 받았다. 그 고생을 대물림하기 싫어 최 씨는 국밥장사를 자기 대에서 끊으려고 했다.

어이없게도!(최 씨는 "어이없었다"고 표현했다) 대학 나와 자동차 만드는 큰 회사에 다니던 큰 아들이 덜컥 가게를 물려받아 버렸다. 3년 전 몸이 많이 아파 가게를 접을까 고민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아들이 하겠다고 나섰던 것이다. "솔직히 지금도 탐탁찮아요. 허지만 어째. 팔자인걸."

밥 때가 지난 오후 3시 쯤인데도 '송정3대국밥'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백발의 노부부에서 앳돼 보이는 20대 아가씨들까지. 손님들도 대를 잇고 있는 것이다. 홀로 국밥을 먹고 있던 김병호(72) 할아버지는 40여 년 단골이라 했다.

"이 집 국밥 맛나요. 이 근처서 체육사를 운영하는데 점심은 대부분 여기서 먹었어. 몸 아프기 전에는 1주일에 네 번은 왔지. 지금은 의사가 육식을 줄이라 해서 1주일에 두 번 정도 와. 이렇게 대 이어 하는 집 드물고 귀하지. 오래 갔으면 좋겠어."

프랜차이즈니 그런 욕심을 낸 적도 있었던 기훈 씨. 하지만 접었다. 일을 크게 벌일 여유도 없었고, 돼지국밥이란 게 그리 큰 욕심을 내서는 안될 음식이라 깨달았던 것이다.

"돼지국밥이 그리 대단한 음식은 아니잖아요. 돈 한 푼 아쉬운 분들이 맘 편하게 드시는 음식이지. 허름한 이런 곳에 일부러 식사하러 와 주시는 게 얼마나 고마운데요. 맛 실망시키지 않고, 한 끼로 든든할 만큼 푸짐하게 드리려 합니다. 제가 남기는 게 좀 적어도 말입니다."

결혼이 늦었던 기훈 씨는 몇 달 전 아들을 봤다.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녀석을 두고 대물림 운운하는 게 우습지만 웬만하면 아들에게까지 돼지국밥이 이어졌으면 한다고 했다.

"우리 있는 이 골목이 돼지국밥 골목으로 알려져 있어요. 하지만 이름에 안맞게 퇴색하는 느낌입니다. 한때는 10여 집 넘게 있었는데, 지금은 우리 포함해 6집 정도밖에 안됩니다. 40~50년 됐다는 집도 있는데, 간판은 그대로 있어도 주인은 다 바뀌었어요. 대 이어 하는 집은 우리 뿐입니다. 그게 가슴을 아프게 해요. 전 제가 살아 있는 한 이 집을 지켜낼 겁니다. 큰 돈 욕심 없이 부산사람, 특히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집으로 말입니다. 제 아들이 그 바람을 이어주면, 흠흠, 그리 될 지는 모르지만…, 좋겠지요."

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
[이 게시물은 여기부산님에 의해 2014-12-11 16:12:54 부산일보 맛집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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