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때 이맛집

급행장

업종 글쓴이 여기부산
주소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 259-27 전화번호 --
등록일 11-11-02 평점/조회수 2 / 1,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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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아마도 한우를 먹은 양으로 따졌을 때, 서면 '급행장'의 손재권(55) 대표를 능가할 사람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1957년 생인 그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고기 냄새를 맡고 성장했다. 가게와 살림집이 같이 있었기 때문에 하루도 고기 냄새가 가실 날이 없었고, 고기를 거른 적이 없다. 그것도 한우 암소만 먹었다. 이 정도면 질릴 법도 한데, 그는 아직도 손님상에서 익어가는 고기 냄새만 맡으면 입에 침이 고인다고 한다. 평생을 고깃집 주인으로 살아갈 운명을 타고난 사람처럼 보인다.

고깃집을 이어 받으려면 음식을 배우라는 부친의 권유가 있었지만, 손 대표는 맛을 알면 되지 굳이 음식을 다룰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먹고 또 먹었다. 그것도 아주 맹렬하게. 6년 전에는 통풍이 발병했다. 통풍은 기름진 음식 등으로 관절 내에 요산이 쌓이면서 생기는 질환이다. 과거에는 잘 먹는 사람이나 걸린다 해서 '부자병', '황제병'으로 불렸다. 병을 얻으면서까지 한우에 집착한 그는 소고기에 대해서 만큼은 절대미각의 소유자다. 한우와 수입산은 맛만 보면 대번에 가려내고, 좋은 소고기를 고르는 안목은 어지간한 축협 중도매인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급행장은 부산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우 전문점이다. 1950년 한국전쟁이 나기 직전에 손재권 대표의 부친 손남출(1923~2009) 씨가 창업했다. 보리차 장사부터 안 해본 행상이 없었던 손 씨는 지금의 급행장 바로 앞에서 포장마차를 열고 고기를 팔기 시작했다. 전쟁이 나자 피난민촌이 형성되고 몰려든 사람들로 주변이 제법 번성했다. 전쟁통에 돈을 번 손 씨는 몇 년 후 지금의 급행장 자리에 있던 2층 기와집을 매입해 고깃집을 차린다. 불고기를 빨리빨리 조리해서 낸다는 '급행장'이란 이름 또한 이때부터 붙었다. 손 씨는 경상도와 전라도 등지의 우시장을 돌며 질 좋은 소를 구입했다. 그렇게 해서 구한 소를 잡는 날이면 횟간과 처녑 등을 이웃에 나눠주면 인심도 쌓았다. 배 고프던 시절에 고기 굽는 냄새와 연기가 진동하니 유혹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터. 급행장은 밀려드는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1960년대 초반에 벌써 직원이 11명에 이르렀다. 1967년에는 현재의 건물을 신축했다. 때마침 신발산업이 호황을 맞이하면서 급행장은 말 그대로 '급행'으로 성장했다. 1960년 후반부터는 직원이 35명 규모로 늘어났다. 지배인만 3명을 두었는데, 그중 한 명은 외상 수금만 전담했다고 한다. 초기 급행장의 주요 메뉴는 불고기, 양념갈비, 소금구이 그리고 갈비탕과 냉면이었다. 이 메뉴들은 지금도 급행장의 대표 메뉴에 올라있다. 냉면 뽑는 기계가 없던 당시에는 장정 두 명이 붙어야 가능했던 국수틀을 사용했다고 하니, 그 모습이 사뭇 궁금하다.

1980년대가 되자 외식붐과 더불어 부산에도 대형 고깃집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한다. 급행장 주변에도 제법 규모가 큰 고깃집이 몰려 들었다. 명성과 맛은 그대로였으나 경쟁은 치열해지고 위세는 전 같지 않은 상황이 도래했다. 그럼에도 수십 년 단골들은 여전히 급행장의 문턱을 넘었다.

손남출 씨는 1997년 3남 4녀 가운데 막내인 재권 씨에게 급행장을 물려준다. 건물과 땅을 절대로 팔지 말고 유지해 줄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행상으로 시작해 맨손으로 일궈 놓은 땅과 건물이기에, 눈을 감아서도 그것 만큼은 지키고 싶은 바람이었을 것이다.

고기장사가 운명이라 생각하고 급행장을 물려 받은 손재권 대표조차도 부친이 쌓아 놓은 40여 년 세월의 무게는 감당하기 버거웠다. 그는 급행장의 전통을 지키는 유일한 방편은 고기의 질에 달려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오로지 한우에만 매달렸다. 지금도 급행장은 안거미, 제비추리 등 몇몇 특수 부위만 거세우를 사용할 뿐, 그 외에는 오로지 한우 암소 '투플러스(1++)' 등급만 고집한다. 그래서 급행장 소고기 소비량의 80% 이상이 투플러스 등급이다.

"원플러스 등급과 투플러스 등급이 가격 차이만큼이나 맛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닙니다. 부위에 따라서는 원플러스 등급이 더 맛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투플러스 등급을 고집하는 것은 급행장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저만의 고집입니다." 이런 고집을 대변하듯 급행장을 들어서면 언제나 한우 유전자 분석 결과서, 등급판정확인서, 구입명세서 등이 손님을 맞는다.

그의 이런 노력은 이미 '선수'들에게 소문이 자자하다. 김해에 있는 축산물공판장의 중도매인들에게 부산에서 괜찮은 고깃집을 소개해달라고 하면 대부분이 급행장을 추천한다. 이유를 물어봤다. "그 집 고기 하나만큼은 확실하지요." 간단명료하면서도 확실한 답이다.

취재 마지막날 한우에 있어서만큼은 절대미각인 손 대표와 '고기 대작'을 했다. 필자 나름대로 까다로운 입맛을 가졌다 자부하며 살아왔건만, 손 대표 앞에서만큼은 주눅이 들었다.

필자 역시 10년 단골이라 급행장 음식을 아는 축에 속한다 생각했는데 식탁에 깔리는 반찬의 때깔과 가짓수가 다르다. "차림이 많이 달라졌네요." "주변에 대형 고깃집이 생기니 고기만 가지고는 안 되겠습디다."

이때다 싶어 심중에 담아 두었던 질문을 슬쩍 꺼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급행장이 불친절하다는 평가가 많던데…." "인정합니다. 성격 자체가 내성적인 데다 고기에만 매달리다 보니 퉁명스러운 점이 있었습니다. 직원들까지 그런 저를 닮더군요. 이러다 큰일나겠다 싶어 직원 숫자도 늘리고 서비스 교육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저부터 변해야 한다는 생각에 많이 노력하는 중입니다."

옆에 있던 부인 길미연(50) 씨가 한마디 거든다. "여기서 나고 자랐는데도 아직도 영업시간만 되면 긴장을 하고 성격이 날카로워집니다. 그래도 요즘은 본인이 의식적으로 많이 노력하고 있는 편이죠." 그러고 보니 이 댁 사장님 표정이 전에 비해 많이 밝아졌다. 한때는 사장님이 무서워 급행장 출입이 꺼려졌던 적도 있었다.

잠시 후 등심, 갈비살, 모둠 등의 고기가 차례로 나왔다. 선홍빛 육질에 눈 내리듯 점점이 박힌 마블링이 환상적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호강이다. "취재라 특별히 신경을 쓰셨나 봅니다." "그런 거 없습니다. 수십 년 단골이든 취재든 순서대로 썰어 냅니다. 그래서 우리집은 줄 잘 서면 특히(!) 좋은 고기 드십니다." 그 말 곧이곧대로 믿고, 줄을 정말 제대로 섰구나 생각하며 고기를 시식했다. 육즙이 입안 가득 퍼지고 씹을수록 구수한 맛이 우러난다. 오래오래 씹고 싶은 욕망이 분출하지만 고기는 아쉬움을 남긴 채 사라져 갔다.

양념갈비 두어 대를 화로에 얹었다. 한우 갈비를 양념에 재어 숯불에 구웠는데 그게 맛있지 않을 턱이 없다. 그런데 급행장의 양념갈비는 상상, 그 이상이다. 60년 전통이 괜한 것이 아니구나 싶은데 손 대표의 말이 조금 뜻밖이다. "남들은 '비법 양념'을 말하는데 우리는 그런 거 없습니다. 고기가 좋으면 기본 양념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고 보니 급행장은 생갈비 가격과 양념갈비 가격이 동일하다. "보통은 양념갈비가 더 싸거나, 같은 값일 경우에는 양이 더 많던데…." 이 대목에서 손 대표는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고기를 사용하는데 어떻게 양념갈비가 더 쌀 수 있죠? 양념이 추가되니까 한 푼이라도 더 비싸야 하는 거 아닙니까? 우리는 생갈비나 양념갈비나 똑같은 투플러스를 쓰기 때문에 가격이 같습니다." 한방 맞은 느낌이다. 습관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에 이런 모순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다가왔다.

토요일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좌석은 순식간에 손님들로 가득 찼다. 자세히 보니 그중 절반 정도가 일본인 관광객이다. 그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다들 맛있어 죽겠다는 표정이다. "오이시(맛있다)!"라는 탄성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상추나 깻잎으로 쌈을 싸서 먹는 방식 또한 자연스럽다.

궁금증이 발동해 한 가족에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후쿠오카에 사는 히사토미 아키오 씨 가족은 2박 3일 일정으로 부산 여행을 왔다고 한다. 고기 맛이 어떠냐는 질문에 한 가족이 동시에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운다. 급행장을 어떻게 알고 왔느냐고 했더니 일본어로 된 가이드북을 보여준다. 가이드북에는 쌈을 싸서 고기를 먹는 방법까지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내친 김에 후쿠오카에 있는 다이토엔(大東園)과 비교를 부탁했다. 잠시 고민하던 히사토미 씨는 "고기 맛은 두 곳 모두 훌륭합니다. 다만 타레(소스)를 사용하지 않고 시오(소금)에 찍어 먹기 때문에 급행장의 고기가 조금 더 담백한 느낌입니다. 여러가지 반찬이 제공되기 때문에 가격 또한 저렴한 편입니다."

다이토엔은 후쿠오카에 있는 야키니쿠 전문점이다. 급행장과 비슷한 210석 규모의 대형 음식점으로 1970년에 창업한 유서 깊은 곳이다. 특히 사가 현에서 생산되는 최고급 와규(和牛)만을 사용함으로써 후쿠오카는 물론 일본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몇 년 전 이곳을 방문했을 때, 부산에서 왔다고 하니 지배인이 뜻밖에도 "급행장을 아느냐"고 물어왔다. 부산을 다녀온 고객들 사이에 소문이 자자해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는 것이다. 급행장의 61년 전통이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에 뿌뜻함마저 느껴졌다.

손재권 대표는 17년째 매년 1월 1일이 되면 그만의 의식을 행한다. 지금 급행장의 간판에는 '61년 전통 한우전문점'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다. 해마다 여기에 숫자 하나씩을 더하면서 전통을 지켜 나가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한다. 급행장 간판에 '100년 전통'이라는 글귀가 새겨지는 그날까지 살아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55년 전 태어난 그곳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부모님 잘 만나서 평생 잘 먹고 살았습니다. 그게 다 급행장을 찾아 주신 고객들 덕분입니다. 제가 그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은 고기 맛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고기를 정직한 가격에 내는 일, 그 한 가지에만 전념하겠습니다."
박상현 자유기고가

[이 게시물은 여기부산님에 의해 2014-12-11 16:13:44 부산일보 맛집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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